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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참된 종려나무 가지의 신앙 - 요 12장 12~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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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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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1212~19

참된 종려나무 가지의 신앙


 (도입)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셨다는 문제 앞에 사람은 양 길로 갈라집니다. 한 갈래의 길은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쪽이며, 다른 한쪽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공세를 가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줄 정치적 메시아로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담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의 번제물이 되려고 예루살렘에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합니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라고 외치지만 정작 그들이 외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들의 해석에 따른 예수, 자신들의 뜻을 이루어줄 메시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어떤 신앙관으로 자신을 세워나가야 할까요? 


(12~16) 타락한 세상의 권세와 타락한 세상의 번영이 주는 관을 쓰는 자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진리의 깃발을 높이 드는 하나님 나라의 신앙관으로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동생이었던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던 향유는 앞으로 있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예표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옵니다. 예수님에 대해 소문을 들었던 무리가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줄 마카비와 같은 메시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반영이라도 하듯 그들의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레 23:40)에 의하면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날을 기념하여 초막을 지을 때 사용했던 나뭇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승리’를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신성한 능력’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겔 40:16)과 (겔 41:18~20)에 의하면 ‘종려나무’는 신성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타고 들어 온 것이 ‘말’이 아니라 ‘나귀’였다는 것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말’은 (시 147:10)에 의하면 ‘힘’을 상징합니다. 말은 대체로 ‘군사력’을 극대화하는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반면 ‘나귀’는 노동의 수단(사 30:24)으로, 짐을 나르는 용도(창 42:26), 교통수단(왕상 13:13)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은 (슥 9:9)의 예언대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우리에게 참 평강을 허락하실 ‘메시아’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종려나무 가지’의 신앙으로는 혼탁한 시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자신의 번영을 꾀하기 위해 타락한 세력과 세상의 번영이 주는 왕관을 쓰려고 승리에만 집착해 있는 헛된 종려나무 가지의 신앙관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고백하는 십자가의 신앙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구원의 참 소망을 찾고, 예수 안에서 참 평강과 안식을 찾는 ‘참 종려나무 가지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가운데 진리의 깃발을 높이 드는 하나님 나라의 신앙관으로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16~18) 아침 안개와 같은 혼탁한 세상에 휘말리지 않도록 자신이 원하는 것을 쫒는 신앙이 아니라 세상을 밝혀주는 진리의 말씀을 쫒아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옆으로 게걸음을 치는 신앙관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 예수님을 세운 무리에게 들려진 것은 대속을 이룰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렸던 사건 그리고 오병이어와 같은 먹을 것을 해결한 사건, 병든 자를 회복시키고, 귀신들린 자를 회복시킨, 육신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사고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야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잘못된 신앙관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비로소 깨달았더라고 요한은 고백합니다.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에 대해 자신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면 그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을 얼마나 말하고 싶겠습니까! 예수님의 기적의 사건을 봐서 알고, 들어서 아는 자들의 심정이 이러했습니다. 요한은 이런 표적만을 구하는 신앙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이 사건을 통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전 1:22)과 (23절)은 말합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보다 진리의 말씀을 쫓아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헛된 것에 환호하는 잘못된 종려나무 가지 신앙이 아니라 진리의 바른 말씀을 배워나가며, 그 말씀 위에 나의 신앙을 올려놓는 ‘참된 종려나무 가지의 신앙’으로 혼탁한 세상을 이겨나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19) 체험과 경험으로 환호하는 껍데기 신앙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 진리를 쫓아가는 종려나무 가지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그분을 따르는 무리가 얼마나 많았는지 바리새인들이 두려워하며 절규하기까지 합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무리가 며칠 뒤에 돌변합니다. 예수님을 향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이제 구원하소서!”라며 “호산나!”를 외치던 그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요 19:15)라며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강력하게 청원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 아니라 기적과 기사와 같은 표적에 환호하는 껍데기 신앙은 또 다른 충동에 넘어집니다. 

    예수님의 능력만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 진리를 쫓아가는 ‘참된 종려나무 가지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롬 10:10)은 말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체험과 경험으로 환호하는 껍데기의 신앙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 진리를 쫓아가는 종려나무 가지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예수님을 따르며, 호산나라고 외치며 종려나무가지를 흔들었던 그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앞장섭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향해 비방하고 손가락질합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던 그들이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까요? 진리를 알지 못하면 자신은 바로 간다고 말하지만 그 걸음은 옆걸음을 치는 게걸음입니다. 나의 것을 채우기 위해 신앙생활 합니까? 이런 사람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라고 외치지만 진리를 바라보고 호산나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을 이루어주소서!”라며 우상을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진리를 쫓아가는 종려나무 가지의 신앙으로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을 예비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예수님을 따르며 호산나를 외치며 종려나무가지를 흔들었던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앞장서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비방합니다

오늘 말씀 묵상을 하면서
나의 모습은 우둔하고 어리석은 신앙이 되서는 안되며
나의 유익을 바라는 신앙이 되서는 안되며
계산적인 방법의 신앙이 되서는 안되며
혼탁한 세상과 결탁해서는 안됩니다
타락한 세상의 권세를 쫒지 말고
진리의 말씀을 쫒아가는 종려나무 가지의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나의 것을 채우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진리의 깃발을 높이 들고
하나님의 신앙관으로 나 자신을 세워
참된 종려나무 가지의 신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profile_image coco 작성일

이전에는 나의 것을 이루어 주소서!
기도하며 호산나를 외치며 찬양했는데
정작 주님 앞에 옆걸음치며 우상숭배적인  신앙생활을
해왔음을 고백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어려움 속에 있지만 말씀에 의지하며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며 감사함으로 쉬지않고 기도하며
기쁨으로 나아가는 참된 종려나무 신앙으로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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