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 예수님처럼 이겨내자 - 요 13장 21~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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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화) | 요 13장 21~30절 | 예수님처럼 이겨내자 |
(도입)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님은 무리의 기대와는 달리 ‘성전 정화사건’을 일으키며,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에 대해 말씀합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죽으실 것에 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요, 아버지의 뜻”이라고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전날 최후 만찬을 마련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이 곧 유월절의 제물이 될 것을 증거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모든 사역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려놓습니다. 최후 만찬 가운데 진행되는 떡과 잔을 나누는 장면은 이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다가올 종말의 긴박함을 어떻게 이겨나가야 하는지 그 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21~22)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영광을 뒤로하고 모든 것을 감내하신 예수님처럼 자신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드려짐의 자세로 종말을 이겨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호산나!”라고 외치며 자신을 더 높이는 군중들의 그 함성에 주목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세워나가는 일에 주목합니다.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보냅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지켜왔던 유월절을 하루 앞당기는 것에 대해 특별히 반응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차지할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마 20:21)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그 순간까지 누가 ‘권력 있는 자리’에 앉을 것인가가 그들의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이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에 한 명도 예외 없이 찔림을 받습니다. 마태는 여기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을 (마 26:22)에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니지요!”
예수님은 유월절의 만찬을 하루 일찍 제자들에게 베풀면서 자신이 받을 영광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는 길이 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계 6장)은 ‘인의 재앙’에서 나타나는 ‘붉은 말’과 ‘검은 말’, 그리고 ‘청황색 말’을 통해 일어나는 각종 재앙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현실 가운데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구원의 완성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드려짐의 자세로 전환하여 종말을 이겨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이 모든 것들을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23~27) 길 잃은 한 영혼의 모습을 가슴 아파했던 예수님처럼 세상의 영혼들에 대해 판단하지 말고 그들을 끝까지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사역에 최선을 다하며 종말을 영적으로 이겨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신하여 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누가 팔 것인지 물어보는 제자들의 질문에 그 이름을 거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그리고 유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이때 사탄이 유다 속에 들어갑니다. 유다가 예수를 팔기 위해 행동을 실행할 때 제자들은 가룟 유다가 회계를 맡고 있었기에 유월절에 사용할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만찬 자리를 떠난 줄 알고 있었다고 사도 요한은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자라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은 두 가지의 중요한 이유를 담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유다의 배반은 아담이 (창 2:17)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배반한 그 값이었으며, (갈 3:13)에 의하면 저주의 값에 대해 완전함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은 자신을 팔아넘길 가룟 유다를 가슴 아파합니다. 한 영혼을 향한 주님의 간절한 마음은 가룟 유다를 향해서도 동일했습니다. 한 영혼이 길 잃은 것을 가슴 아파했던 예수님의 가슴을 가지지 못한 자는 종말의 군사가 될 수 없습니다. 한 영혼이 길 잃은 것을 가슴 아파했던 예수님처럼 그들을 판단하는 ‘저울’과 ‘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길 잃은 영혼들을 끝까지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십자가 군병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가운데 종말을 굳건하게 이겨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28~30)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대해 두 마음을 품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오직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그 기쁨으로 종말을 이겨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가룟 유다의 가족은 열심 당원 출신이었습니다. 열심 당원들은 일반적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아를 통한 전환기를 따르지 않습니다. 이들은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역사를 진행시키고, 결정시켜야 한다는 사상을 가졌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고, 병든 자를 회복시키며, 귀신을 내쫓을 뿐만 아니라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과 대적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가룟 유다의 눈에 열심 당원의 모습으로 비쳤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따른 가르침은 예수가 자신과 같은 열심 당원이 아니라는 것을 확증시키는 장면이었습니다. 자신의 사상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대속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적인 한계가 가져다주는 ‘두 마음’은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이뤄가는 걸음에 자신의 뜻을 올려놓는 ‘두 마음을 품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약 1:8)과 (약 4:8)은 “두 마음을 품은 자는 모든 일에 정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마음이 악으로 가득하게 된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호 10:2)에 따르면 “두 마음을 품은 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상이 아니라 벌”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대해 두 마음을 품는 자가 되어 유다처럼 넘어지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그 기쁨으로 종말을 이겨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 자신의 영광을 더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처럼 자신의 사상을 관철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뜻을 가미한 ‘두 마음’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이루신 모든 사역은 오직 한 가지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구원의 제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알고 계셨지만 이런 유다의 모습을 가슴 아파했던 예수님의 가슴으로 길 잃은 한 영혼을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종말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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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실 것을 아시고
유월절 전날 최후의 만찬을 여시며
떡과 잔을 나누십니다
베르로가 자신을 부인 할 것과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낌없이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이러한 에수님을 바라보며 나 자신은 이 땅위에 남겨진 자로
무엇을 해야 할까?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
오직 한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구원의 백성을 불러 모으는 일에 사력을 다하며
예수님처럼 기쁨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길 잃은 영혼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사역을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오직 한 마음으로 예수님만을 사랑하며
한 영혼을 향한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기를 소망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얼굴을 뵙는 그날까지
늘 기쁨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