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아름다운 마무리 = 신 34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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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목) | 신 34장 1~8절 | 아름다운 마무리 |
34: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34: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4: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34: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34: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34: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34: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34: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
(도입)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오른 이유는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기 위해 느보산에 오른 모세의 걸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걸음이었습니다. 한 편에서 보면 절망이 교차하는 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모세의 걸음에는 세상에서 말하는 절망과 크게 다른 점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가데스에서 있었던 므리바 사건과 관련됩니다. 그의 죽음은 (민 20:12)에 따르면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시킨 것에 대한 값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두 번째는 출애굽과 광야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역을 펼쳤던 40년에 대해 값이었습니다. 첫 번째의 값이 거룩을 훼손한 것에 대한 징계의 값이라면 두 번째 값은 모세의 순종에 따른 값을 말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아름다운 마무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이 땅에서 마무리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자신의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전에는 불신앙의 길을 걸었다면 모세처럼 하나님께 붙들려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할까요?
(1~3) 인생이 허무함에 무너지지 않도록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그 나라를 영적으로 바라보는 확고한 언약의 신앙으로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가 서 있는 느보산에서부터 단까지는 직경이 약 290km에 이릅니다. 특히 단은 해발이 약 2,850m에 이르는 높은 산으로써 가나안 땅의 최고봉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거리를 모세가 육안으로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장막을 열어줍니다. 놀라 사건이 일어납니다. 단뿐만 아니라 온 납달리와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을 봅니다. 그리고 네겝과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봅니다. “보이시고!” 인간의 시력으로는 볼 수 없는 것 그러나 하나님께서 초자연적 역사를 일으켜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임할 가나안을 보게 합니다. 비록 육신의 몸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먼저 언약의 성취를 봅니다.
특히 여리고는 가나안 정복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하나의 획일점을 찍을 장소였습니다. (수 2:1)에 의하면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낸 장소가 여리고였습니다. 그리고 (수 6장)에 의하면 언약궤를 앞세우고 순종의 걸음으로 승리를 거두게 될 장소가 여리고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곳을 보게 합니다. 인간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는 한계점이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한계점은 어디까지일까요? 놀라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뜻을 펼친 것까지가 인간의 한계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는 막힌 곳에도 길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이 광야와 황무지일지라도 다윗처럼 살길이 있습니다. 인생이 허무함에 무너지지 않도록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그 나라를 영적으로 바라보는 확고한 언약의 신앙으로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4~5) 열심과 특심에 대한 수고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명과 사역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마무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모세가 육신으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영의 눈으로 가나안을 봅니다. 이 장면을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의 언약과 관련된 세 사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거론하면서 보게 합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한 것에 따른 징계의 값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합니다.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았으며 느보산에 올라 약속의 땅을 바라봤던 유일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와 같이 특별한 순간을 맞이하도록 배려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모세의 순종이었습니다. 그가 비록 실수한 것도 있지만 40년 동안 하나님 말씀의 실현을 위해 순종했던 헌신과 희생의 걸음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열심과 특심에 대한 수고를 기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언약이 중심을 이루면서 그 언약이 순종으로 연결되었던 대표적인 족장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죽음조차 흔적을 남겨두지 않습니다. 모세가 우상화가 되는 것을 방지합니다. “모세가 여호와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5절) 이 말씀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타난 모세의 모습은 순종이었습니다. 열심과 특심에 대한 수고보다 모세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명과 사역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마무리를 만들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6~8) 세상이 인정하는 기념비적인 실적의 탑을 쌓는 것보다 후손들에게 신앙으로 기억을 남기는 아름다운 영적인 마무리를 펼쳐나가야 합니다
모세의 죽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뤄진 것처럼,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실현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느보산에서 생명을 거둬갑니다. 모세가 ‘백이십 세’에 눈도 흐리지 않고, 기력도 쇠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거둬가신 것은 모세의 역할이 여기까지였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모세가 죽었고 그를 30일 동안 애곡하고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다고 증거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모세의 묻힌 곳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장사는 하나님의 통제 가운데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유 1:9)에 의하면 모세의 시체를 두고 천사장 미가엘과 마귀가 다툼이 있었다고 증거합니다. 모세의 시체가 우상화를 이루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위대함을 만들어가고, 모세의 업적을 만들어가기 위해 그를 지도자로 세운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이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측면에서 모세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이런 모세를 우상화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사 28:7)의 말씀처럼 옆걸음을 치게 만들려고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지도자였습니다. 출애굽, 홍해를 건넌 사건, 만나와 므리바 사건, 40년의 광야를 이끌어가는 등 기념비적인 업적의 중심에 세워진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세의 기념비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그의 신앙을 기억에 남기도록 조치를 취합니다. 모세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면서 우리 또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이 인정하는 기념비적인 실적의 탑을 쌓는 것보다 후손들에게 신앙으로 기억을 남기는 아름다운 영적인 마무리를 펼쳐나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우리의 한계점은 세상 사람들의 한계점과 다릅니다. 우리 또한 피조물이 가지는 유한성 안에서의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언약 백성인 우리의 한계점은 피조물이 가지는 한계점이 한계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한계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와 관련한 언약에 대해 확고한 신앙으로 자신의 인생을 세상이 주는 한계점을 벗어나 아름답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인간의 육체는 누구도 예외 없이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명과 사역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마무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세상이 인정하는 기념비적인 실적의 탑을 쌓는 것보다 후손들에게 신앙으로 기억을 남기는 아름다운 영적인 마무리를 펼쳐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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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누구도 예외없이 이 땅에서의 인생의 마무리는 있지만
나의 인생의 마무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를 생각해봅니다
아주 어릴적 큰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출석하게 되어서
주야를 가리지 않고 불타는 신앙의 시간도 있었고
세상의 곁길로 잠시 갔다가 다시 돌아와
오늘까지 신앙의 여정위에 나를 세워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나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신 큰어머니를 떠올리며
지나간 모든 시간들을 되돌이켜보는 마음이 먹먹한 아침입니다
인생의 수많은 굴곡처럼 신앙도 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그 힘든 시간들이 지나고 나니
더 견고하고 단단한 믿음의 울타리 안에 있음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앞으로의 나의 인생의 여정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속에서
이 땅에서의 삶을 아름다운 신앙을 만들어
하나님께 감사와 순종하는 사명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며
후손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남기고
나의 삶은 아름다운 영적 마루리를 잘 하는 성도가 되도록
하나님안에서 살아가는 시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구름님의 댓글
구름 작성일
오늘도 주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의 모습을 돌아보니
나의 마지막을 상상했을 때, 세상과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지만 생각했지 나의 신앙이 어떻게 기억될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나의 노력과 행함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나의 신앙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떤 신앙의 모습으로 기억될지를 돌아보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마무리를 만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나라와 언약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마무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김민규님의 댓글
김민규 작성일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며 삶의 기준이 되어 주십니다.
말씀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순종으로 실천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결단합니다.
신나는사람님의 댓글
신나는사람 작성일
인생의 여정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그 끝을 한 번 상상해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까지 주님 안에서 열심을 다하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Jsw126님의 댓글
Jsw126 작성일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하기위해 순종했던 헌신과 희생의 걸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