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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최후의 보루가 되는 판결 = 신 25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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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본문

20()

251~3

최후의 보루가 되는 판결

 

25:1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25:2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면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앞에서 그의 죄에 따라 수를 맞추어 때리게 하라

25:3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매를 지나치게 때리면 네가 네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

 

 

(도입)

하나님께서는 선민인 이스라엘이 복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율법과 그에 따른 세부 조항까지 말씀합니다. 그 가운데는 사회생활과 관련된 규례와 심지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규례까지 제정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법이 최후의 보루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법은 강제력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이런 법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됩니다. 인류를 향한 최초의 법은 (2: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 세계에 법이라는 울타리를 세웁니다. 피조 된 사람은 완전성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니 법은 인류가 태동할 때도, 지금도 인간 사회의 최후 보루로서 지키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법이 선을 이끄는 최후의 보루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죄악으로 물든 인간 세상을 선함으로 인도할 수 있는 법은 사람들의 뜻을 물어서 다수가 원하는 방향에서 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악법도 법이라고 합니다. 100명 가운데 99명이 찬성하여 만들어진 악법은 법이 될 수 없습니다. 법은 죄악으로 물든 인류를 제도로서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러니 다수가 원하는 것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이 하나님 말씀에 합한 것인지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동성애와 같은 것들이 평등법으로 다뤄질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돌이켜 볼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법을 주신 이유는 복된 길로 바르게 가도록 인도하는 나침판과 같은 기능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재판장이 판결할 때도 시대와 상황과 권력을 가진 자에게 편중하여 판결하는 것은 판결이 아니라 불법입니다. 불의와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재판은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까요?

 

(1) 재판은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공의를 지키고, 세우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아갈 이스라엘 백성들을 법에 따라 판결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의를 내립니다. 먼저 재판해야 할 이유에 대해 말씀합니다.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면입니다. ‘시비는 말의 논쟁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싸움까지 포함합니다. ‘시비가 생겼을 때 공동체의 최후의 보루는 재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시킵니다. ‘시비는 쌍방의 주장이 팽팽하여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력이 동원되고, 힘으로 만든 집단 등이 동원됩니다. 이때 권력과 집단의 압력에 의해 결정이 나는 불의함이 없어야 합니다. 죄로 얼룩진 인간의 모습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법은 인간 우상화를 이루고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것이 법이었습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4:24) 여기에는 정의가 없고, 공의가 없습니다.

죄악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세상에서 중심을 이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의와 공의입니다. 법이 여기에 대해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1) 법에 대한 판결의 기준 또한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재판이 공동체를 지키고, 바르게 세우는 데 있어서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재판장은 권력의 자리가 아닙니다. 특히 재판은 권력과 야합해서는 안 됩니다. 재판은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닙니다. 재판은 하나님 나라의 공의를 지키고, 세우는 데 있어서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2) 재판은 인간적인 감정 또는 판단에 따른 기준이 아니라 공의에 입각한 판결을 내려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어가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17:6) 등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재판할 때 그 사건과 관련해 증인을 세우도록 합니다. 이때 증인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을 세우도록 합니다. 이유는 거짓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은 (3) 이하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이 죄를 범한 이후 나타나는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면 재판장은 어떨까요? 본문 (1)에서 시비를 가리는 재판에 대해 단수를 사용하고 있지만 재판장은 복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비를 가리는 재판이 재판장 개인의 감정 또는 그 사람의 개인적 기준과 판단에 의해 판결되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재판장의 복수가 재판의 공정성을 설명하고 있다면 재판의 단수는 객관성에 대한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판결에 정의와 공의가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에 대해 형벌을 가할 때도 그의 죄에 따라’ ‘태형을 집행하도록 합니다. 감정이나 인간적인 판단이 앞서서 과도한 처벌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공의가 시행되도록 명합니다. 판결뿐만 아니라 집행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공의가 살아있도록 명합니다. 재판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허락한 인간 사회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재판은 인간적인 감정 또는 판단에 따른 기준이 아니라 공의에 입각한 판결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와 같이 재판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정의롭고, 공의롭게 세워나가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3) 재판은 형벌을 통해 죄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교화를 이끌어내며 세상을 죄악으로부터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이 마귀의 세력을 향한 심판이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재판은 형벌은 내리되 형벌이 주된 목적은 아닙니다. 형벌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공의를 담고 있다면 그 형벌의 성격은 교화를 이끌어내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 또한 여전히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요, 형제라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로 다스리는 태형을 내릴 때도 사십까지만 허락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큰 이유와 목적을 담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형벌 이상의 보복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태형‘40대까지로 정한 것은 형벌의 목적이 보복이 아니라 교화에 있다는 것을 강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모욕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사십 이상의 태형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하여 (고후 11:24)에 의하면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태형을 내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사십의 매는 형벌에 그 사람을 천하게 여기는 모욕을 추가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특히 태형이 교화의 성격이 아니라 심판의 성격을 가졌다면 사십에 더한 매를 줄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재판은 정의와 공의를 세워나가기 위한 목적과 함께 교화를 이끌어내어 공동체를 죄악으로부터 지켜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재판은 보복이 아니라 교화의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세상을 죄악으로부터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재판하는 재판장은 정치와 권력에 휘둘림을 당하지 않아야 하며 물질과 사람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재판장과 재판은 죄악 된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얻기 위해 집단을 이루면서 주장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측면에서 봤을 때 정의와 공의가 없다면 이들이 원하는 판결은 편견이요, 불의에 편에 선 판결입니다. 재판이 인간적인 감정 또는 판단에 따른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공의에 입각한다면 그 사회는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이 함께합니다. 천지와 만물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재판은 형벌을 통해 교화를 이끌어내고, 세상을 죄악으로부터 지켜내고, 사회를 정의롭고, 공의롭게 만들어가는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는 자, 하나님께서 그와 그 사회에 대해 반드시 그 값을 묻습니다. 불의한 재판을 일삼았던 이세벨과 그 성읍 장로들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불의한 재판장 본디오 빌라도는 그 이름이 영원한 저주 가운데 놓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입각한 재판장 그리고 재판과 판결이 이 나라의 정의와 공의를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하여 법이 최후의 보루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으로 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율법과 규례를 그에 따른 세부 사항까지 만듭니다
백성을 위하고 백성이 피해 받지 않도록
또한 건강한 공동체를 위하여 법은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하지만
세상은 공의와 정의가 사라져가고
권력을 가진 자들의 입맛대로 법은 더 이상
약자를 위한 법과 공의를 위한 법이 아닙니다
법 앞에 재판은 공정해야 하며 억울한 재판이 되어서도 안되기에
재판은 공의에 입각한 판결을 내려
공정하고 정의롭게 만들어가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하며
교화를 이끌어 내고 세상을 죄악으로부터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재판장은 그 누구를 위한 재판이 아니라
죄악 된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만들어 가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겠습니다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지 않도록
성도와 교회는 이 시간에도 간절히 기도하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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